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 선거인단 (문단 편집) == 직접 득표율과의 차이 ==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사실상 '[[미국의 주|주]]'가 선거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국민 전체를 기준으로는 더 많은 표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인단 투표에서 밀려 떨어진 후보들이 적지 않게 있다. [[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]] 직후 기준으로 당해 [[힐러리 클린턴]](vs. 트럼프)과 [[2000년]] 대선의 [[앨 고어]] vs. [[조지 W. 부시]]를 포함하여 5번이나 있었다.[* 나머지 3번은 19세기 선거. 특히 틸던의 실패 요인은 선거인단 숫자에서 딱 1명 차이였다는 것. 반대로 클리블랜드는 대통령을 하던 입장이었다.] 저 둘의 차이점이라면 앨 고어는 선거인단 숫자에서 딱 4명이 모자라 아쉽게 패배했지만 힐러리는 선거인단 숫자에서 꽤 큰 차이를 보이며 패배했다는 점. 아무튼 이러한 특이한 선거제도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낙선하는, 직선제를 시행하는 타 국가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가능하며, [[1876년 미국 대통령 선거|실제로 그러한 사례가 있었다.]] [[1960년]] [[존 F. 케네디]] vs. [[리처드 닉슨]], [[1968년]] [[리처드 닉슨]] vs. [[휴버트 험프리]][* [[린든 B. 존슨]] 행정부 산하에서 부통령을 지냈다.]의 선거의 경우 당선된 쪽이 전체 득표수에서도 박빙으로 이기긴 했지만 의외로 선거인단에서는 큰 차이로 대승을 거뒀다. 그리고 비록 결과가 뒤바뀌진 않았지만, [[1916년]] 대선의 경우 민주당 [[우드로 윌슨]] 49.2% vs. 공화당 찰스 에반스 휴스 46.1%로 3.1%p나 득표율 차이가 났으나 선거인단 확보수는 윌슨 277 vs. 휴스 254였다. 당시 경합주였던 선거인단 12명의 캘리포니아는 윌슨 46.65% vs. 휴스 46.27%, 표차이는 3773표로 초박빙이었다. 만약 이 당시 휴스가 캘리포니아에서 2000표(당시 전국의 0.01%) 정도만 윌슨에게 뺏어와서 이겼으면 선거인단은 윌슨 265 vs. 휴스 266 으로, 득표율에서 3.1%p가 더 적은 휴스가 당선되는 일이 가능할 뻔하기도 했다. [[2004년]] 대선에서도 전국 득표율은 [[조지 W. 부시]] 50.7% vs. [[존 케리]] 48.3%로 2.4%p 차이였지만 선거인단은 부시 286 vs. 케리 252였다. 이 당시에 선거인단 20명인 오하이오에서 11만8775표 차이로 부시가 이겼는데(부시 50.8%, 케리 48.7%, 군소후보 0.4%) 만약 케리가 6만표(전국 0.05%)만 더 부시에게서 빼앗아와서 오하이오를 먹었으면 선거인단 총합은 부시 266 vs. 케리 272로 뒤바뀌어 전국 득표율에서 2.3%p 정도 더 적게 얻은 케리가 당선되는 것도 가능할 뻔하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